우리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아테네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스승이었으며 그중 플라톤도 그의 열렬한 제자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는 형이상학적 담론이나 거대 사상 같은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문답법(산파술)이 주는 깨달음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만들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문답법은 말 그대로 묻고 답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깨달음을 원하는 혹은 진리의 부재로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묻고 답하는 식의 대화를 즐겼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식 대화는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도와준다. 여기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산파술로 불리게 된 이유가 있다. 산파란 출산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나 깨달음을 외부적인 요소로서 전하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진리와 깨달음을 잉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산파술로 불리게 된 이유다. 항간에는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파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산파술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어머니가 산파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산파술로 불리게 된 이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악법도 법이다'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아테네는 어수선한 시기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에서는 아테네에 민주정에 반하는 참주가 되는 사람도 있었고 적국인 스파르타로 망명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아테네가 참주제에서 다시 민주정으로 회복되자 그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던 아테네의 몇몇 의원들은 소크라테스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사상과 생각을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변명이나 핑계도 대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사형을 판결받는다. 소크라테스는 이후에도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에게 내려진 처분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성적 올바름에 기조한 삶을 끝까지 지키며 독배를 든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외부적인 요서의 법이 아닌 자기 내면의 법으로서 최후를 받아들인 것뿐이다.
스승의 죽음과 플라톤의 철인 정치
당시 플라톤은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우매한 민중이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생각한 플라톤은 민주 정치에 강한 환멸을 느낀다. 그는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들이 정치를 하는 민주정이 아닌 진리를 깨달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를 해야 된다는 '철인 정치'를 주장한다. 이후 플라톤의 철학과 사상은 서구 역사의 2천 년을 지탱해 오며 인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필연적인 이원론의 탄생을 야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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